출사표
이 문서는 취직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런 절박함을 우리가 느끼면 온 우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Seokjun Kim
MEAN Experienced Full-Stack Developer
Hardware Prototype Professional
Seoul, Korea / colus001@me.com
나는 누구세요?
전공 포르투갈어, 첫직장은 외국계 보험회사 마케팅 부서. 전혀 지금의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을 첫 직장으로 정했고, 그나마도 그동안 배웠던 공부와는 거리가 서울에서 상파울루만큼 떨어져 있었다. 8개월간 나름대로(?) 즐겁게 회사를 다녔고,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4년동안 고생을 직쌀나게 하고 어쩌다보니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그 눈물나는 고생기는 여기에서...
일명 100원짜리 조립식
어릴때부터 뭘 만지작 거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집이 가난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아서 장난감을 많이 갖진 못했다. 레고는 꿈도 못꿨고, 하루 용돈 100원을 받으면 긴 골목을 뛰어 내려가서 100원짜리 조립식(당시에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을 사와 조립하는게 일과였다. 6-7살때 였음에도 에어울프를 좋아해서 그 키트를 가장 많이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100원, 200원짜리 프라모델 조립을 반복하다보니 당연히 질렸고, 그보다 비싼 장난감을 사주시진 않았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다른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수수깡과 스티로폼이었다. 물체주머니에 있던 모터와 스위치들을 이용해서 스트로폼을 잘라 배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수도없이 다시 만들고 그러다가 방을 스티로폼 부스러기 투성이를 만들어 어머니께 등짝 스메싱을 꾸중을 듣는일도 많았다.
딱히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돈이 있었으면 그냥 배를 샀겠지... 어쨋든 한번 시작하면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누나들이 이야기 하더라. 나야 뭐 정신없이 하고 있었으니 기억도 별로 없었다.
컴퓨터, 만화 그리고 게임
구두쇠 부모님께서 컴퓨터는 의외로 일찍 사주셨는데, 아마 10살때 쯤 이었던것으로 기억한다. 286 AT 컴퓨터가 처음으로 접한 컴퓨터였고, 학원을 다니면서 베이직으로 구구단을 만들고 남북전쟁 같은 게임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컴퓨터를 접했고,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친구 덕분에 PC통신을 시작하였다.
하.. 추억의 atdt0
뭐랄까 그땐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컴퓨터 하는 사람이 게임을 좋아했고, 게임을 찾으러 사설 BBS 를 뒤지고 다녔고, 그러다 어른의 세계에 눈을 뜨고 그 사람들이 또 만화를 좋아하더라. 고등학교때는 만화 서클에 들어서 동인지를 내려고 하기도 했지만, 마감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서 내 만화를 싣지는 못했다.
그리고 3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세 단어와 연결된 것들을 무척 좋아한다. 여기에 음악정도 추가하면 딱 맞을 정도. 만화에서 지식을 배웠고, 게임을 하며 친구들을 만났으며, 이 모든것은 컴퓨터를 통해 연결되었다. 딱 한번 가출을 결심했던 것도 만화책 때문이었고, 코딩을 배우고 처음 만든게 (아마 많이들 그랬겠지만) 텍스트 게임이었다. 컴퓨터는 친구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이었다.
그러한 애정 때문인지 컴퓨터공학과로 대학을 진학하기도 했었지만, 빠르게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제대하고 나니 한창 IT 거품이 꺼지던 시기였던 지라 미래또한 암울했다. 물론 그렇다고 컴퓨터 자체가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개발자를 꿈꾸기엔 좋지 않은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전공을 때려치고, 회사를 때려치다
그래서 전공을 뒤로 하고 편입을 준비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일본어를 시작했는데, 그때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준비하다 우연한 기회에 관심이 포르투갈어에 관심이 생겼고,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일본어능력시험도 합격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 같다. 포르투갈어도 그 전에 해왔던 많은 것들도 그냥 흥미본위로 시작했었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했고 성과도 있었다. 비록 3학년 편입으로 포르투갈어과를 진학했지만, KBS 2부작 다큐멘터리를 번역에 감수까지 했고, 춘천세계레저총회에서 통역도 맡았었다.
이건 그냥 사진 찾다가 이뻐서 넣었다. 뭐 어때!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전공도 좋았다. 전공 관련된 회사를 들어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뭐랄까 새로운걸 만들고 싶다 라는 꿈을 버리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미 구직활동을 할때부터 벤처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외국계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엔 자전거 루트를 지도상에 그려주는 서비스에서, 스터디 그룹을 쉽게 모을 수 있게 해주는 앱, 요리 레시피를 편하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앱까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망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돈은 없고 2년을 투자했는데 얻은 것은 없었다. 개발자 없는 IT 회사를 만든다는 미친 생각을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 고집과 개발자를 설득할만한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투자는 커녕 제대로된 런칭 조차 못해보고 그저 망했다.
그래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한다
너무 힘들었다. 능력이 없다보니 기껏 정부지원사업을 따와도 남 좋은 일 시키기 일수였고, 그나마도 문제 투성이로 끝나곤 했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인도에 외주도 주고 해봤지만, 컴퓨터공학과(그나마도 군대갔다오니 무슨 미디어 학과로 바뀌어있었다.)에서 배운거라곤 구구단밖에 없는 나는 일을 시키는 것 조차 힘이 들었다. 안된다면 안되는 것이었고 된다고 하는 사람은 비싼 외주 비용을 제시하더라.
Codecademy 에서 시작해서 지인의 추천으로 Node.js 를 접하게 되었고, 기존에 있는 코드를 조금씩 수정하며 조금씩 배워나갔다. 내가 주로 집중한 것은 실제로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 혹은 프로그램을 무엇으로 만들까 하는 것이었다. 즉, 퍼포먼스가 나오건 말건 일단 돌아가게 하는 것이 나의 지상목표였다. 그러다가 카툰컵이라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망했어요... 또 망했어요...
사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팀에 기획자로서 참여하기로 했었다. 우리는 게임을 개발하고 상대편 회사에서는 주로 비쥬얼적인 것을 공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이런저런 어른의 이유로 진행이 더뎠고 우리쪽도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외주성 파트너 관계로 카툰컵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도 나는 주로 기획자의 입장에서 서비스 기획서를 개발 기획서로 개선하는 작업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금 달라졌다.
현재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나와 호랑이님도 사실 우리거였다. ㅜ ㅜ
카툰컵은 웹툰보다는 기존의 매거진 형태를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쇄 만화를 기반으로한 원고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휴대폰에서는 글씨가 너무 작아 보기가 힘들었고 이 때문에 나는 Marvel Comics 앱 에서 지원하던 컷 이동 방식을 제안하였다. 그쪽에서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덕분에 데이터 구성이나 기본 효과 들을 구성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개발자로서 첫번째 일을 받게 된다. 아마 개발을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화 원고의 컷을 분할하여 이펙트를 부여하고, 이를 웹상에서 미리보기할 수 있는 관리자쪽 기능을 만드는 것이 기념할만한 첫번째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전부 10년 이상의 경력자 분들이었고, 폐를 끼칠수 없었기에 정말 한달동안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서 프로토타입에 총력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코드지만 버그는 있었지만 어찌어찌 동작은 잘 되었고, 비록 카툰컵 서비스는 1년을 못버티고 종료하였지만, 그 동안 컷 에디터는 문제 없이 잘 동작했다.
불운 그리고 깨닳음
그 이후로 한 프로젝트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유니티로 게임을 만들다가 프로젝트가 취소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해오던 프로젝트들 또한 큰 성과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던 프로젝트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리하게 되었다.
- 스터디그룹 SNS 그룹플
- 자전거 SNS hikebike
- 카툰컵
- G- 모바일 게임 프로젝트
- F- 웹 서비스 프로젝트
개인적으로 하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다섯개의 프로젝트가 개발자 혹은 개발자가 아니었던 시절 내 손에서 나와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당시에 나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 정부지원사업을 쫓아다니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외주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체 프로젝트에도 시간을 투자했다. 특히나 2015년 초에는 10여군데 정부 사업에 지원했는데, 잘된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여전히 생활은 불안했고, 자체 프로젝트를 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너무나 부족했다. 카툰컵의 실패에서 얻은 깨닳음으로 이후에 수주한 외주 프로젝트를 서비스 기획면에서부터 신경을 쓰다보니 개발은 더디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모든걸 혼자 해야하는 외로움에 치가 떨리면서도, 한번 마음놓고 쉬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취직을 결심했다.
개발자로서의 첫 직장을 갖다
신변을 정리하고 Lab80 이라는 회사에서 나는 개발자로써 처음으로 회사원이 되었다. 취직 전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지만, 그래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프론트엔드 개발자지만 Full-Stack 에 가깝게 일을 했고, 주로 Meteor 와 Blaze 기반으로 작업하였다.
레딧 링크를 가져와 팝업 형태로 표시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한 일
3.5개월의 기간동안 힘들지만 즐겁게 일했고, 아쉽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은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짧은 기간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나도 적지 않은 부분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적어도 후회는 남아있지 않다.
직장이 필요합니다 (굽신굽신)
마케팅 부서에서 시작해서, 실패한 스타트업의 파운더를 거쳐, 개발자가 되었다. 가끔 사람들은 변덕스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나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첫 회사를 들어가던 그 시점에서 부터 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관심이 있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Lab80에서 단순히 Hellomoney에 기능을 추가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다양한 것을 제안하고, 기획에 없는 것이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네이버 카페를 무너뜨리는 그날까지
뭘 만드는데에만 집착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차근차근 고쳐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개인 프로젝트는 조금씩 하려고 한다. 단순히 내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배우는 것에는 작은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가 일할 곳을 위해서라도 개인 프로젝트는 필요하다. 지금은 Angular-Meteor로 Reddit과 유사한 서비스를 한국형 레딧 조금씩 만들고 있다.
그리고 프론트엔드 개발자이자 풀스텍 개발자로서 직장을 구하고 있다. 개발자로서의 경력은 3년 정도, 바라는 것이라면 재미있고 가치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 돈은 뭐 당연히 다다익선이겠지만 먹고살 수 있는 정도라면 괜찮다. 대신 아직은 좀 더 꿈을 꾸고 있으니까 미래가 화창하진 않아도 희망 정도는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기여하고 싶다.
tl;dr
- 풀스텍 Javascript 개발자
- 만화, 게임 그리고 음악을 좋아함
- 재밌고 가치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음
- 밥은 먹고 살정도로 주시면 됨
Languages
- Japanese, English, Portuguese
Technical Profile
- Mainly javascript. And objective-c, swift, unity C#
- Angular.js, Meteor, Node.js, iOS
- Ubuntu, OSX
- Arduino, Raspberry Pi, Rhinoceros CAD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