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웹툰을 싫어하는가?
오랜만에 만화를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서 글을 적으려 하는데, 만화책 한 1,000권쯤 있다는 건 사실 어디다 내놓기도 좀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레어한 만화책을 쓰자니 그것도 식상할 것 같다. 뭘 써야하나 고민하다 내가 어째서 웹툰을 멀리하게 되었는지, 왜 더이상 보려하지 않는지 짚어보려고 한다.
알았어 알겠는데 난 안본다고
과거로...
나는 청소년 기에 한번쯤 저지른다는 가출과는 거리가 먼 청소년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가출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통금시간을 어기고 늦게 까지 놀다 집에 들어가기를 수차례, 아버지께서는 분노와 함께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하셨다. "만화책을 다 가져다 버리거라! 공부하는 놈이 무슨 만화책이냐!" 솔직히 내가 집에 늦는게 왜 만화책 때문인지 납득할 수도 없었지만, 만화책은 나에게 취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매를 맞아도 참던 나는 격렬하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 가출을 감행했고, 물론 2시간만에 귀가하였다 내가 맨발로 나가지만 않았어도... 의외의 반응에 놀라신 아버지는 만화책들을 버리지는 못하셨고, 압수하는 걸로 처벌의 수위(?)를 낮추셨다. 비록 두시간만의 가출이긴 했으나, 내가 청소년 시절 유일하게 가출한 사건은 만화책 때문이었다.
아이큐점프의 드래곤볼이 워낙 인기가 많긴 했지만, 국내 작품들은 소년 챔프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원피스와 나루토가 연재되기 시작하는데...
만화책이야 어릴때부터 좋아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건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부터도 만화책은 조금씩 모으고 있었지 그 시절 남자애들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는 정도였고, 만화책에 돈을 본격적으로 탕진하기 쓰기 시작한 건, 소년챔프를 구독하면서 였지 않나 싶다. 당시의 소년챔프는 짱, 소마신화전기, 검정고무신, 미스터 부, 아이러브티쳐, 붉은매 등등...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작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매주 나오는 소년챔프 신간은 친구가 없는 곳으로 이사왔던 나에게 큰 위로와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당시에 소년챔프지에 연재하고 있던 많은 작품들은 비록 일본 만화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독자적인 세계관과 개성적인 캐릭터, 다양한 소재는 지금도 사실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소마신화전기. 비록 여러가지 이유로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많은 팬들이 연재를 다시해주길 기대할만큼 그럴일은 없겠지.. 독특한 세계관과 생동감있는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던 작품이었다. 짱은 어떤가? 74권으로 최근 연재를 종료하기까지 국내에 드믄 장수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내가 정말 좋아한 작품은 미스터 부 였는데 개그만화였지만, 그 속에 녹아있던 사회비판 정신과 메시지는 학창시절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 웹툰,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선 이런 좋은 만화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될 수 있는 건 시스템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일본 만화 단행본에서는 지금도 짜투리 만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전 잡지나 단행본을 보면 이러한 담당자와 만화가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읽을 수 있는 표현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록 코믹한 에피소드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결코 편집부와 만화가 사이가 아름답기만 하진 않았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만화가와 편집부의 대립과 협업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바쿠만
일본 만화인 바쿠만에서는 이 만화가와 편집부의 대립과 협업을 아주 미화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편집부의 역할에는 부작용도 물론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순수 미술 분야가 아닌 이상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고, 이렇게 편집부와 피드백을 주고 받는 부분이 부정적이라고만 볼 순 없을 것 같다. 만화 잡지를 판매하는 입장의 의견이나 팬들의 반응을 작가에게 전달하고, 스케쥴이나 만화가 멘탈 관리, 미디어 믹스 등 여러가지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것이 편집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소년 배틀 만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까지 불리는 전설적인 작품 드래곤볼도 편집부와 만화가이의 의견차이가 항상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을 판매부수와 팬들이 증명하고 있다. 물론 판매부수가 높은 인기 만화를 과도하게 장기 연재로 유도한다는 비판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순 없지만, 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작품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럽다. 작가의 의도를 망가뜨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좋은 작품에는 편집부의 노력과 정성도 있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도 없다.
웹툰의 성공사례라고는 하나, 원래부터 힘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작가였다
그럼 과연 현재 포탈 웹툰은 어떤가? 우선 양적인 면만 본다면 다음 웹툰 편집부의 경우 2-3명이 전부라고 한다. 그도 이해할만한 것이, 포탈사이트는 웹툰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단지 트래픽을 조금 얻어갈 뿐이지. 그러다보니 이쪽에서 편집부와 만화가의 대립이라고는 고작 마감이 전부. 트래픽만 나오면 되니 작품의 질보다는 구색을 맞추는데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마추어 수준의 작품이 연재되는 황당한 일도 발생한다. 일종의 자유방임 방식이 전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네이버나 다음 웹툰의 수많은 연재작 중에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가 적다는 것에 많은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90년대 소년챔프와 매우 비교되는 점인데,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은 차라리 빠르게 퇴출되어 다른 만화가에게 기회를 주었다.
2. 시장 규모가 아니라 수익 모델이 문제
우리나라의 시장이 과연 작은가? 잘 모르겠다. 국내 만화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된 것은 만화대여점과 이해할 수 없는 과도한 규제가 문제였지 시장 규모가 그 실체는 아니었다. 열혈강호는 한때 권당 6-7만부를 판매하기도 했었다. 그것으로 과연 넉넉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데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몇천권 팔리는 현재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많이 상황이 달라졌고, 정부의 알수 없는 탄압만 없었다면 일본의 규모에는 못미치겠지만 나름 시장을 형성할 수는 있었을거라고 본다. 90년대 중후반 다들 집에 가면 만화책 몇십권쯤은 가지고 있었고, 만화책을 사서 읽는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보편적이었다.
규제에 맞서 서명운동을 했으나 당연히 헛수고에 그쳤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 규제에 반대 서명 운동을 펼쳤고, 나도 서명하여 힘을 보태었으나 아쉽게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솔직하게 "아이고 만화 죽는다 안된다" 하는 소리가 설마 하는 생각에 현실적적으로 와닿진 않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이후에 일어난 만화대여점 열풍은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웹툰이 등장하기까지 오랜 기간 한국 만화계를 동결시키는데 본의 아니게 기여하고 말았다. 이후에 이어진 스캔본의 범람은 그 만화대여점 조차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문제는 시장의 규모가 아니라 수익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웹툰으로 얼어붙었던 만화계에 활력을 가져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만화계가 부활되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포탈에게서 웹툰의 가치는 이미 언급했듯 트래픽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결국 작품을 그리고자 했던 만화가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네이버 웹툰의 최대 인기작은 단연 마음의 소리 로 웹툰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소장할 가치가 있을만한 작품으로 부를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그(?)만화는 그 분야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재탄생했지만, 실상은 어른들의 이상한 행동을 짱구의 시선으로 보는 풍자하는 성인만화였다. 귀여운 캐릭터에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도라에몽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나온 타임패러독스는 도라에몽에서 수없이 나왔던 소재였다. 이 로봇 너구리 고양이가 꺼내는 물건들은 만화가의 상상의 산물이었고, 비록 대부분의 결말은 우습더라도, 가볍지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된 나이트런, 하여튼 멋있는 장면은 많다
반면 웹툰들은 어떤가? 그저 알 수 없는 드립과 말장난으로 점철된 시간때우기 작품이 많아도 너무나 많다. 일상툰과 개그만화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가 봐야하는 전부라면 조금 슬퍼진다. 다른 작품들도 있다고? 물론 그렇지만, 인기 있는 작품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빈약한 스토리텔링과 오글거림을 주체할 수 없는 유치한 대사들, 멋있기만한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작품에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이건 수익모델때문이 아닌것 같긴한데.. 미생의 성공은 고무적이나, 그런 작품은 매우 드믈다. 지금도 원피스와 같은 작품들은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툰과 서사를 가진 만화를 돈주고 사라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트래픽을 올리는 작품을 주로 선정하게 되다보니, 호흡이 긴 스토리 위주의 만화가 자연스럽게 밀려나게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만화가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웹툰은 1주일 간격으로 연재된다. 심지어 1주일에 두세번씩 연재하는 경우도 많고, 컬러링까지 하는 것이 기본이다. 1주일동안 구상 -> 콘티 -> 작화 -> 채색 까지 해야한다. 이에 대해서는 만화가 조석도 언급한 경우가 있었는데, 정신적인 압박이 상당하다고 한다. 특히, 일상툰의 경우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작가는 물론 주위 사람들을 짜내고 짜내서 겨우 버텨낸다고 한다. 아이디어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스토리 위주의 만화들 또한 짧은 기간안에 많은 단계를 거의 작가 혼자 다 처리해야 하니, 퀄리티나 스토리에 깊이가 없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정도까지 연재해 올 수 있다는건 경의로울 정도
웹툰 작가들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도 않다. 마음의 소리를 예를 들어보면 매월 첫만원대의 수익을 올린다고 하는데, 한국 웹툰 계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만화가의 수익이 그 정도라고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단행본을 낼 수 있을만큼 인기가 없는 작가들의 경우 수입이 매우 불안정하고, 때문에 작품 구상이나 취재를 위한 시간을 낼 만큼 여유있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또 그래야 한다. 짧은 호흡으로만 그려지는 만화는 짧은 시간동안만 소비되고, 이는 작품의 수명 나아가는 직업으로서 만화가의 수명을 깍아먹는다. 마음의 소리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이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웹툰이 나아가야 할 길
비난으로 글을 마무리짓고 싶진 않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그리려 노력하고 있고, 비판받아야 할 점들도 있으나 어쨌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작가들이 광고 만화를 그려야 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지만, 반대로 보면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다양한 기회를 작가들에게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웹툰을 잡지만화의 시점에서 접근했던 시도가 눈물만 난다 우리가 개발팀을 맡았던 카툰컵 이었다. 매거진이라는 구독 방식을 앱 서비스라는 형태로 실현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우리가 배워야할 점을 시사하긴 했다.
-
편집부의 가치는 있다고 하더라도 잡지 발행이 답은 아니다.
이미 웹툰의 소비층은 매거진 형태를 선호하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다른 작품도 구매해야 한다? 잘모르겠다. 다만 편집부의 존재는 필요하다. 상상력은 무조건적인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세워 줌으로써 비로서 꽃이 핀다. 적어도 독자에게 어필해야하는 만화라는 미디어는 독자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불가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
만화가는 어쨌든 만화로 먹고 살아야 한다
만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화책이나 웹툰이라는 형태도 있지만 잡지에서, 때로는 광고 미디어로 혹은 예술로. 그렇지만 만화의 진정한 가치는 만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웹 트래픽이나 홍보 효과에서 나와서는 안된다. 이는 비단 기억되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만화가가 건강한 수익모델 위에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
다양한 판형을 지원하자
웹툰은 버티컬 스크롤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는 큰 모니터 기반에서는 부드럽게 작동하는 건 사실이다. 마우스 휠로 스크롤 하는 방식은 매우 편리하지만, 스마트폰에서는 또 다르다. 스마트폰에서는 한 두 작품은 모르나 긴 작품을 감상하기엔 피곤한 것이 사실이고, 연출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제한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판형을 지원하여 웹툰의 가능성과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어찌보면 참 진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 웹툰의 현실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와중에 나타난다. 쓰고보니 다 레진에서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이 내가 웹툰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고, 그러면서도 웹툰에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